나는 시를 잘 모른다.
감성적인 아이도 아니다.
하지만 어린시절 칠판 앞에서 배웠던..

한용운님의 복종과
조지훈님의 승무는

글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내겐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복종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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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이란 시는 조국을.. 사랑하는 이에 빗대어 쓴 시라고 배웠지만 사춘기 시절 나는... 숨어있는 뜻 따위는 상관없었다. 사랑노래의 아름다움만 다가왔더랬다.


승무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볓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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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 때... [승무]는 암호를 풀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던 시다. 하지만 읽을 수록 승무를 보고 있는 듯한 섬세한 표현과 시적 표현이 너무 좋았던 시다.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까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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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에게]는 내가 어른이 되어 까닭없는 불안함과 초조함에 힘들어 할 때 그것은 바로 외로움이라고 알려준 시다.



단 몇 편의 시밖에 모른다.
하지만 단 몇 편의 시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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